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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너답게 살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나답다는 게 뭔지 정의조차 못 내리면서 그 말만 따르라고 하니 오히려 더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아모르파티(Amor fati)란 라틴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철학자 니체가 남긴 개념인데, 이 말을 다시 들여다보고 나서야 저는 그 불편함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 정말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라는 뜻이었을까요. 제가 직접 들여다본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니체가 본 삶, 고통 그 자체라는 통찰

니체는 서른 중반부터 눈이 아파 책도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건강이 나빠졌고, 이후 정신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쉰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나는 삶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곧 문제라고 이야기하려 한다"는 문장이 있는데, 저는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니체는 이 통찰을 영원회귀라는 개념과 연결지었습니다. 영원회귀란 지금 이 순간이 정확히 똑같은 모습으로 무한히 반복된다고 가정했을 때도 이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사고실험을 뜻합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저는 예전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직장 생활 속에서 문득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를, 저는 니체를 통해서야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조건에 있어도 결핍을 찾아내고 그 결핍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겁니다.

요약: 니체는 삶에 고통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고통과 같다고 보았고, 이 통찰이 아모르파티의 출발점이 됩니다.

 

아모르파티는 긍정이 아니라 초인이 되는 것

저는 처음에 아모르파티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살아라"는 자기계발서 문구쯤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니체가 말한 사랑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사랑이란 영혼이 육체의 결점을 감싸 줄 때이다"라고 썼는데, 저는 이 문장이 상대의 약점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본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와는 다른 결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읽었습니다. 운명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내 삶의 조건을 긍정하되 거기서 만족하고 멈추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넘어서야 할 존재로 초인을 제시했습니다. 초인이란 지금 가진 조건과 사회가 학습시킨 관성을 스스로 넘어서는 인간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니체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만족하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출처: Britannica, Superman(philosophy)). 저는 이 대목에서 제가 왜 지금 상태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배우려 했는지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니체는 이 극복의 과정을 낙타-사자-아이라는 세 단계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 낙타: 짊어진 조건과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단계
  • 사자: 기존의 억압적인 틀에 맞서 싸우는 단계
  • 아이: 스스로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단계

이 세 단계 중 제가 가장 어렵게 느낀 건 아이의 단계였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건 오히려 부끄럽고 창피한 일로 여겨지는데, 니체는 바로 그 부끄러움을 감수할 줄 알아야 진짜 새로운 관점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

요약: 아모르파티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조건을 인정한 채로 계속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다움이란 무엇인가

예전의 저는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생기면서부터, 독서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조금씩 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모르파티를 접하면서 저는 나답게 산다는 게 지금의 저를 무조건 사랑하고 만족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족한 모습과 지나온 후회, 현실적인 한계까지도 제 삶의 일부로 인정하되 거기 머물지 않고 조금씩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저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 자체가 때로는 또 다른 사회적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만 나다운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다움을 찾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현실의 책임이나 관계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처럼, 중요한 건 지금의 부족함과 한계를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다움은 완성된 "진짜 나"를 어느 날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거치며 조금씩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저는 결론지었습니다.

요약: 나다움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인정한 채로 끊임없이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제가 저에게 던진 질문들

Q. 나는 정말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을까?

A. 처음엔 아니라고 저에게 답했습니다. 그런데 니체를 알고 나서, 사랑한다는 게 지금 이대로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정하고 나아간다는 뜻이라는 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Q. 나답게 살라는 말, 나는 정말 그 말대로 살고 있는 걸까?

A. 솔직히 저도 확신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저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고 저에게 답했습니다.

 

Q. 부끄러운 내 모습까지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A. 그래야 한다고 저는 결론지었습니다.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다음 단계로 넘어갈 힘이 생긴다는 걸 저는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Q. 나다움을 못 찾으면 나는 실패한 걸까?

A. 아니라고 저에게 분명히 답했습니다. 나다움은 어느 날 발견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저는 잊지 않으려 합니다.

 

결론

저는 아모르파티를 무조건 긍정하며 살라는 말로 오해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는 지금의 부족함까지 끌어안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태도였습니다. 나다움이라는 것도 결국 완성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저를 조금씩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으시다면,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오늘 하루 무엇을 조금 더 넘어섰는지부터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EZGEalHy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