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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오랫동안 믿었습니다. 부당한 말을 들어도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넘겼고, 내가 조금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야 뒤늦게 화가 나거나, 엉뚱하게 가족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감정 저널링 습관을 만들며 착각했던 것과 실제로 달라진 점을 세 가지 대조로 정리해 봅니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 무조건 참던 나, 알아차리는 나

예전의 나는 분노를 조절한다는 것을 무조건 참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감정을 참는 게 지금까지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압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정서표현억제라고 부르는데, 감정을 안 느끼는 게 아니라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만 억누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억누른다고 감정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누다심)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계속 감정을 조절하고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다 보면 정작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고, 참다 참다 결국 마음이 병든다고 지적합니다(출처: 부정적 감정 표현 연습의 필요성, 강현식 심리학자). 이 이야기가 제 경험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직장에서는 순간적으로 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그때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곱씹으며 혼자 힘들어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나간 일을 계속 곱씹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반추라고 하는데, 반추가 길어질수록 스트레스와 불안이 오히려 커진다고 합니다. 참는 것과 조절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고 나서, 성숙함을 표현을 억누르는 능력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능력으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 — 마음에 쌓아두던 나, 글로 꺼내는 나

예전의 나는 불편한 감정이 들어도 그게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도 모른 채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합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사람들에게 힘들었던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며칠간 글로 쓰게 하는 실험을 반복했는데, 이를 표현적 글쓰기라고 부릅니다. 이 연구에서 표현적 글쓰기를 한 사람들은 침습적 사고와 회피적 사고가 줄고 작업 기억이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감정을 마음속에 쌓아두는 대신 글로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뇌가 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칼럼에서도 감정을 다스리는 첫걸음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칼럼). 매일 감정을 기록하면 오히려 그 감정에 더 빠지는 게 아닐까 처음엔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곱씹기만 하는 반추와 짧게 적고 넘어가는 기록은 다르다는 걸 직접 해보고 나서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무조건 참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하는 것도 저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관계 속 표현 — 참거나 터뜨리던 나, 선을 긋는 나

예전의 나는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거나, 순간의 감정대로 쏟아내는 것 사이를 오갔습니다. 화를 표현하면 관계가 나빠질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화를 내느냐 참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진짜 문제라는 걸 압니다. 직장이나 가족처럼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곳에서는 "그 말은 조금 불편합니다"처럼 차분하게 선을 긋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감정 저널링을 하며 배웠습니다. 표현하는 방식에 달렸을 뿐,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선에서 차분히 선을 긋는 것과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다르며, 전자를 연습하기로 했습니다. 거창한 규칙 없이 시작해도 충분했습니다. 특별한 형식 없이 그날 있었던 일과 그때 느낀 감정을 짧게 적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 하루 5분, 정해진 시간에만 짧게 적기
  • 기분 좋았다/나빴다가 아니라 감정의 원인까지 함께 적기
  • 문장이 이상하거나 앞뒤가 안 맞아도 자기 검열 없이 쓰기
  • 쓰고 나서 상대를 어떻게 존중하며 표현할지 한 문장 더 적기

얼마나 오래 해야 효과를 보는지도 궁금했는데, 꾸준함이 형식보다 중요했습니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매일 5분씩 쌓인 기록이, 어느 순간 감정을 더 빨리 알아차리게 해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체감했습니다.

 

결론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건 감정을 숨기는 능력이 아니라 내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감정 저널링은 그 알아차림을 위한 가장 쉬운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 짧게 적어보시길 권합니다. 참는 대신 기록하는 것, 그것부터가 건강한 감정 조절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iup6_D9U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