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제가 쉰다고 부르던 시간의 대부분은 뇌 입장에서 근무 연장이었습니다. 소파에 누워 있어도 눈은 화면을 따라가고 귀는 소리를 처리하느라 바빴으니까요. 뇌과학에서 말하는 쉬는 상태는 몸이 편한 상태 대신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뇌에 접수되는 정보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기준으로 다시 세어보니 저는 주말 내내 한 번도 쉰 적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진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2001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가 PET 촬영을 하다가 뜻밖의 장면을 봤습니다. PET 촬영이란 미량의 방사성 물질로 뇌의 어느 부위가 일하는지 영상으로 찍어내는 검사인데, 검사받는 사람이 눈을 감고 무념무상에 빠진 순간 내측 전두엽과 후측 대상 피질 같은 영역이 오히려 바빠진 겁니다. 컴퓨터가 아무 작업을 하지 않을 때 돌아가는 기본값 프로그램처럼 뇌가 쉴 때 스스로 가동되는 이 회로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출처: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
이 회로가 돌아갈 때 벌어지는 일도 확인돼 있습니다. 미국 코넬 대학교 연구팀이 참가자들에게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앞서 본 인물과 같은지 맞히게 했더니, 다른 활동을 하던 사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맞혔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일본의 한 대학 연구팀 실험에서는 멍한 상태에서 뇌 혈류가 오히려 원활해지고 아이디어 제시도 빨라졌다고 합니다.
저도 이 회로가 켜지는 순간을 한 번 선명하게 경험했습니다. 가족들과 캠핑을 가서 작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아이들과 깔깔대며 장난치다가, 잠깐 아무 말 없이 불꽃만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이 조용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민이 해결된 것도, 특별한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몇 분의 기분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불멍이 왜 힐링이라고 불리는지 그때 몸으로 이해했습니다.
요약: 뇌는 오감 자극이 끊겼을 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회로를 켜서 스스로를 정리한다. 화면을 보며 보내는 휴식으로는 이 회로가 켜질 기회가 없으며, 멍때리기가 기억력과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 회로의 역할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