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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실험에서 장내 미생물을 없앤 쥐는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스트레스 호르몬을 훨씬 많이 뿜어냈습니다. 그런데 미생물을 다시 넣어주자 그 반응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이 실험이 장과 뇌 연구의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제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속이 불편했던 날마다 유독 예민했던 기억들 말입니다. 장과 기분의 연결 고리를 제 경험과 함께 정리해봤습니다.



뇌와 장은 연결되어 있었다

저는 오랫동안 기분이 가라앉으면 그 원인이 전부 마음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거나 마음을 다잡으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소개된 장뇌축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장뇌축이란 장과 뇌가 신경과 호르몬, 장내 미생물을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연결 체계를 말합니다.

두 기관을 잇는 전용선도 있습니다. 미주신경입니다. 미주신경이란 뇌에서 출발해 심장을 지나 위와 장까지 내려가는 우리 몸에서 가장 긴 신경으로, 뱃속의 상태가 이 길을 타고 실시간으로 뇌에 보고됩니다. 게다가 기분을 좌우하는 세로토닌은 상당량이 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안정감과 행복감에 관여해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무균 쥐 실험이 이 연결을 처음 증명했습니다. 장내 미생물이 있어야 뇌가 스트레스에 정상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뒤로 관련 연구가 빠르게 늘었다고 합니다. 기분은 머리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뱃속에서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참고: 출처: Sudo et al., The Journal of Physiology(2004)

요약: 장과 뇌는 미주신경과 장내 미생물로 이어진 하나의 회로입니다. 뱃속 상태가 스트레스 반응까지 바꿉니다.

 

식사가 기분을 바꾸고 있었다

이 연결을 알고 나니 제 경험들이 하나씩 설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과식했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다음 날이면 속만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집중이 잘 안 되고 기분까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기분 탓이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반대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걷기와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몸의 컨디션이 올라오면 신기하게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몸 상태가 나쁜 날 유독 작은 일에 짜증이 났던 것도, 컨디션 좋은 날 같은 일을 웃어넘겼던 것도 결국 같은 회로의 양면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기분이 계속 가라앉으면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에 최근 며칠의 식탁부터 돌아봅니다. 늦은 밤 자극적인 음식이 늘지 않았는지, 채소와 발효식품이 빠지지 않았는지, 끼니 시간이 들쭉날쭉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점검합니다. 마음이 힘들다고 마음만 붙잡고 있던 예전보다 회복이 빨라졌다고 느낍니다. 정신과 몸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이라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참고: 출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요약: 자극적인 음식 다음 날의 무거운 기분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마음보다 식탁을 먼저 돌아봅니다.

 

장에만 매달리지 않는 균형

다만 저는 여기서 균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장내 미생물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스트레스와 우울의 원인을 장에서 찾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감정에는 인간관계와 경제 문제, 직장 환경, 수면, 생활습관까지 수많은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유산균 하나로 마음이 낫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균 쥐 실험은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이지 사람의 우울과 불안을 전부 설명하는 답은 못 됩니다. 저는 이 대목이 오히려 위안이 됐습니다. 감정의 문제를 의지가 약한 탓으로만 몰아붙일 근거도, 장 하나로 전부 해결된다고 믿을 근거도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택한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움직이면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같이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즘 지키는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 기분이 사흘 이상 가라앉으면 최근 일주일의 식사·수면·움직임을 먼저 적어본다
  • 늦은 밤 자극적인 음식을 먹은 다음 날의 기분을 기록해 나만의 연결 고리를 확인한다
  • 한 끼에 채소나 발효식품을 하나씩 더하고 식후에 10분이라도 걷는다

마음이 힘들 때 마음만 고치려 들기보다 몸과 생활 전체를 돌아보는 것. 그게 제가 이 방송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입니다.

요약: 장은 만능 열쇠보다 점검 목록에 가깝습니다. 식사·수면·움직임·스트레스 원인을 함께 살피는 균형이 핵심입니다.

 

제가 저에게 던진 질문들

Q. 기분이 자꾸 가라앉는 건 내 마음이 약해서일까?

A.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저는 정리했습니다. 몸 상태가 마음을 끌어내리는 날도 분명 있었습니다. 자책하기 전에 요즘 뭘 먹고 어떻게 잤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Q. 그럼 유산균만 챙겨 먹으면 되는 거야?

A. 그건 아니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감정에는 관계와 환경, 수면까지 같이 작용합니다. 유산균은 거들 수 있어도 원인을 살피는 일을 대신해주지는 못합니다.

 

Q. 쥐 실험 결과를 사람인 나한테 적용해도 될까?

A. 그대로 단정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방향을 알려주는 근거로만 받아들입니다. 대신 제 몸으로 확인은 해볼 수 있습니다. 먹은 것과 다음 날 기분을 적어보면 제 데이터가 쌓이니까요.

 

Q. 오늘 저녁 당장 뭐부터 해볼 거야?

A. 오늘은 자극적인 야식 대신 가볍게 먹고 식후에 동네 한 바퀴를 걸을 겁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기분이 어떤지 한 줄 적어보려 합니다. 제 뱃속과 기분의 연결을 직접 확인해보는 첫 기록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기분이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이면 마음과 함께 뱃속을 의심합니다. 며칠의 식탁과 잠, 움직임을 돌아보고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칩니다. 두 번째 뇌를 돌보는 일이 곧 첫 번째 뇌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속이 더부룩했다면 내일 아침 기분도 한번 관찰해보시길 권합니다. 자기만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기분 관리가 훨씬 구체적인 일이 됩니다.

다음에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 이 글을 찾아 헤매지 않으시려면 구독해두시는 걸 권합니다. 공감♥ 하나는 저에게 잘 차린 한 끼처럼 든든하게 남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izqv_idY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