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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오갔던 두 목소리를 옮겨봅니다.
분량만 채우던 나: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면서 하루를 빡빡하게 채웠어. 뭔가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지.
목적을 묻는 나: 그런데 해야 할 일을 계속 늘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대체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번아웃은 뭔가를 이루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는 상태잖아. 성취라는 걸 뜯어보면 결국 노력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아. 노력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이어가려면 끈기가 필요하고, 끈기를 계속 유지하려면 결국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상태가 지속돼야 해. 여기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봤어.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만 집중했지, '왜 하느냐'는 거의 묻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일정을 촘촘하게 채우는 걸 노력이라고 착각했던 셈이지.
분량만 채우던 나: 열심히 사는 것과 목적 있게 사는 게 뭐가 다른데?
목적을 묻는 나: 열심히 사는 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는 거고, 목적 있게 사는 건 그 에너지가 최상위 목표와 연결돼 있는 거야. 전자는 양의 문제고 후자는 방향의 문제거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결정성이론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았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느낄 때 내재적 동기, 즉 외부 보상 없이도 자발적으로 지속되는 동기가 강해진다고 설명하는 이론이야. 이걸 최상위 목표, 인생의 궁극적인 관심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해. 최상위 목표는 그 아래 있는 작은 목표들에 방향과 의미를 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출처: 자기결정성이론의 HRD 적용에 대한 논의, 한국학술지인용색인).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자'가 인생의 최상위 목표처럼 느껴지지만, 대학에 오면 그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하위 목표로 내려앉잖아. 지금까지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도 성취감보다 허무함을 더 크게 느꼈던 이유가 여기 있었어.
분량만 채우던 나: 그럼 그 최상위 목표는 어떻게 찾는데? 못 찾으면 어떡해?
목적을 묻는 나: 나도 처음부터 명확했던 건 아니었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그냥 쭉 나열해본 다음, 그 사이 공통점을 거꾸로 찾아 올라가는 방식이 그나마 효과적이었어. 비교적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일들은, 억지로 정해둔 일과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적과 실제로 연결된 것들이었어. 반대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시작했거나 결과만 바라보고 했던 일은 쉽게 지쳤고 결국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지. 하는 일의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 열 가지 일을 하더라도 그중 아홉 개가 최상위 목표와 무관하면 결국 지치지만, 세 가지 일만 하더라도 그게 전부 방향과 맞아 있으면 훨씬 덜 지친다는 걸 체감했어. 한 번에 답을 내려 하지 않아도 돼. 지금 하는 일들을 쭉 적어보고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 최상위 목표와 맞지 않는 일은 과감히 정리하거나 줄이는 것, 목표를 상위·하위로 나눠 방향과 수단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
분량만 채우던 나: 그럼 최상위 목표만 찾으면 번아웃은 사라지는 거야?
목적을 묻는 나: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려워. 아무리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지나친 업무량, 수면 부족, 성과에 대한 압박이 반복되면 결국 지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해 업무량 조절과 충분한 휴식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데, 이는 목적의식만으로 신체적·정신적 소진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목적이 있는데도 계속 지치면, 목적을 의심하기 전에 업무량과 휴식부터 먼저 점검해봐야 해. 방향이 맞아도 속도가 과하면 지치는 건 당연하니까. 목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지금 페이스가 현실적인지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해. 무작정 바쁘게 사는 대신, 지금 하는 일이 가고 싶은 방향과 연결돼 있는지, 그리고 그 속도가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속도인지를 같이 봐야 진짜 오래가는 갓생이 되는 것 같아.
분량만 채우던 나: 그럼 지금 당장 뭘 해야 해?
목적을 묻는 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고, 그중 최상위 목표와 무관한 일은 줄이거나 정리해보려고 해. 그리고 남은 일들의 페이스가 현실적인지도 같이 점검할 생각이야.
결국 번아웃 없이 오래가려면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하느냐가 먼저라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최상위 목표를 찾고 거기에 맞지 않는 일은 정리하되, 그 페이스가 현실적인지도 함께 점검하는 것, 이게 오래가는 갓생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목표를 다 걷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만 골라 '이게 원하는 방향과 연결돼 있나'를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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