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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버렸는데도 한 달 뒤 서랍을 열어보면 신기하게 또 그 자리에 물건이 채워져 있던 적, 저도 있습니다. 종이가방, 소스 유리병, 화장품 샘플. 다 그럴듯한 이유로 남겨뒀지만 정작 한 번도 다시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유난히 게으르거나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문제였습니다. 정리정돈 습관을 만들며 제가 착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왜 나는 그 서랍을 다시 채웠을까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머그컵을 공짜로 나눠주고, 컵을 받은 사람에게는 얼마면 팔겠느냐고,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얼마면 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컵을 가진 사람은 갖지 않은 사람이 부른 값의 거의 두 배를 불렀습니다(출처: Kahneman, Knetsch & Thaler,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똑같은 컵인데도 내 것이 되는 순간 가치가 부풀어 오르는 이 현상을 소유효과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사람은 얻는 기쁨보다 잃는 아픔을 훨씬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성향까지 겹치면, 이미 내 것이 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했습니다. 쇼핑백이나 택배 상자, 한두 번 쓰고 넣어둔 생활용품을 보면서 늘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돈을 주고 산 물건은 쓰지 않아도 버리는 순간 괜히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다시 서랍 속으로 넣어두곤 했습니다. 이게 제가 유난히 미련해서가 아니라 소유효과와 손실회피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요약: 내 물건의 가치를 실제보다 부풀려 느끼는 소유효과와 잃는 것을 더 아프게 느끼는 손실회피가 겹쳐서, 물건을 버리는 손이 유독 무거워집니다.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은 진짜 이유

우리가 물건을 붙잡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언젠가 쓰겠지입니다. 그런데 이 언젠가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실은 이미 써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돈이나 시간이 아까운 마음,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후회를 미리 당겨와 걱정하는 마음이 함께 작용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지출해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 부르는데, 그 물건을 사느라 쓴 돈은 물건을 계속 갖고 있든 버리든 이미 제 손을 떠난 돈입니다. 그런데도 그 돌아오지 않을 돈이 아까워서, 정작 지금 쓰지도 않는 물건에게 소중한 공간을 계속 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 역시 돈을 주고 산 물건일수록 버리는 게 유독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리를 하다가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 공간과 마음을 그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언젠가 쓰겠지"라는 말 뒤에는 이미 쓴 돈이 아까운 매몰비용 심리가 숨어 있으며, 그 돈은 물건을 계속 쥐고 있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정리하지 않은 집이 나를 몰아세우는 방식

프린스턴대학교 신경과학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여러 물건은 뇌의 시각피질 안에서 서로 신경 반응을 억누르며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한다고 합니다(출처: Journal of Neuroscience, McMains & Kastner). 서랍 안에 물건이 많을수록 뇌는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는 에너지를 덜 쓰게 됩니다. 여기에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판단이 더 어려워진다는 선택의 역설까지 더해지면,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늘 입던 옷만 다시 꺼내 입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실제로 UCLA 연구팀이 가정집을 방문해 조사한 결과, 집을 어수선하다고 표현한 사람일수록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 패턴이 건강하지 않은 쪽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Saxbe & Repetti,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쌓인 물건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몸은 저것도 치워야 하는데 하고 작게 긴장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해야 할 집이, 정작 저를 은근히 몰아세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요약: 어지러운 공간은 뇌의 주의력을 갉아먹고 스트레스 호르몬 패턴까지 흔들어, 쉬어야 할 집에서도 몸이 긴장 상태로 있게 만듭니다.

 

제가 실제로 겪은 변화와 실천법

몇 년간 안 쓴 물건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은 뒤로, 저는 한꺼번에 정리하려 하지 않고 서랍 하나, 옷장 한 칸씩 조금씩 비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까운 마음이 컸지만, 막상 정리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까지 가벼워졌습니다. 특히 오래 입지 않은 옷을 정리할 때마다 과거에 대한 미련도 함께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물건을 살 때도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저는 비우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무조건 많이 버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다시 쓸 가능성이 있는 물건까지 미니멀리즘이라는 이유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버리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지금의 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 장소가 아니라 물건 종류로 시작하기 (오늘은 수건, 내일은 컵)
  • 새 물건 하나가 들어오면 안 쓰는 물건 하나를 내보내기
  • 최근 2년간 손 한 번 안 간 물건, 딱 세 개만 골라 정리하기
  • 바로 버리기 아까우면 나눔 상자에 담아 한동안 지켜보기

결국 정리는 적게 소유하는 경쟁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더 집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약: 한꺼번에 비우려 하기보다 종류별로 조금씩, "최근 2년간 안 쓴 세 개만"처럼 작은 기준으로 반복하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오래갔습니다.

 

제가 저에게 던진 질문들

Q. 돈 주고 산 건데 버리면 손해 아니야?

A. 그 돈은 산 순간 이미 제 손을 떠났다고 저에게 짚어줬습니다. 지금 물건을 붙잡고 있든 보내든 그 돈은 돌아오지 않으니, 매몰비용에 더는 공간을 저당잡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Q. 추억이 담긴 물건까지 다 정리해야 미니멀리스트인 거야?

A. 아니라고 저에게 분명히 답했습니다. 정리는 적게 소유하는 경쟁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걸 가려내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니, 의미 있는 물건은 남겨도 괜찮다고 정리했습니다.

 

Q. 정리해도 며칠 지나면 나는 또 서랍을 채우지 않을까?

A. 저도 실제로 그랬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에 다 비우기보다, 하나 들어오면 하나 내보내는 규칙으로 다시 차오르는 걸 막는 쪽을 택했습니다.

 

Q. 물건을 못 버리는 내가 유난히 미련한 사람인 걸까?

A. 그렇지 않다고 저에게 정정했습니다. 소유효과와 손실회피는 제 성격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게 설계된 결과라는 걸 알고 나서, 저를 탓하는 대신 방법을 바꾸는 쪽을 택했습니다.

 

결론

물건을 비운다는 건 결국 소유효과와 손실회피라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조금씩 마주하는 연습이라고 저는 결론지었습니다. 정리는 물건을 잃는 일이 아니라, 그 물건에 저당잡혀 있던 공간과 마음의 여유를 도로 찾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서랍 하나만 열어, 최근 2년간 손 한 번 안 간 물건 딱 세 개만 골라보시길 권합니다. 그거면 오늘 하루는 충분히 잘하신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TueIYuM2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