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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머릿속만 환하게 켜지는 날 있으시죠. '다음 주에 그 일이 틀어지면 어쩌지', '그때 그 말은 실수 아니었을까'. 저도 그런 밤이 많았습니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면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을 계속 돌려봤습니다.

 

 

그런데 걱정을 일기로 추적한 연구에서 걱정의 91%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밤들을 갉아먹던 걱정의 정체를, 제 안에서 오갔던 두 목소리로 정리해봤습니다.

 

걱정하는 나: 오늘 그 일, 잘못되면 어떡하지. 계속 생각나.

구분하는 나: 수치부터 보자. 불안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게 하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한 달간 추적한 연구가 있어. 결과는 평균 91.4%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거야(출처: LaFreniere & Newman, Behavior Therapy(2020)). 열에 아홉은 머릿속에서만 벌어진 일이었던 셈이야. 우리 경험도 다르지 않았어.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만들어내며 밤을 보냈지만 지나고 보면 걱정했던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고, 막상 문제가 생겨도 그때 가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잖아.

걱정하는 나: 그래도 미리 걱정해두면 대비가 되는 거 아니야?

구분하는 나: 나도 오래 그렇게 믿었어. 최악의 수를 생각하는 데는 숨은 이득이 있대. 최악을 그려두면 뭔가 대비하는 기분이 들고, 일이 끝나면 '최악을 생각해둔 덕에 이만큼 한 거야'라는 보상까지 따라와. 이 이득 때문에 걱정이 습관으로 굳는 거야. 그런데 대비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만 대비였어. 준비 없이 상상만 반복된다면 그건 감정 소비야. 여기에 반추가 얹어져. 지나간 일이나 오지 않은 일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계속 곱씹는 사고 방식이야. 문제는 악순환이야. 미리 걱정하면 불안이 높아지고, 높아진 불안이 다시 걱정을 불러. 이 고리를 돌다 보면 생각은 자동 조종 사고로 넘어가. 늘 하던 방식대로 저절로 재생되는 생각의 회로인데, 사람들을 만나고 온 밤 '내가 말실수했나'부터 트는 게 딱 그거였어. 이 정도가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커지면 진료가 필요한 단계로 넘어간대. 걱정이 많은 게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걱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래. 관건은 정도야.

 

걱정하는 나: 그럼 이 걱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구분하는 나: 걱정이 올라오면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 '이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행동으로 옮기고, 이미 손을 떠난 일이면 붙잡지 않으려 해. 상대가 우리를 어떻게 볼지, 지나간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생각한다고 바뀌지 않는 영역이야. 중요한 건 걱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거야.

걱정하는 나: 사람들 만나고 온 밤, 말실수를 계속 곱씹게 되면 어떡해?

구분하는 나: 그건 손을 떠난 문제라고 소리 내어 말해봐. 평소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일수록 실제로 실수했을 확률은 낮대. 그래도 남는 마음은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보는 쪽이 혼자 굴리는 것보다 나았어. 밤에 커지는 걱정에는 기록이 잘 들었어. 인지 행동 기법의 한 방식인데, 생각을 종이에 꺼내놓고 사실과 대조하며 감정 반응을 바꿔가는 심리 치료 방법이야. 예상하는 최악의 결과를 다 적고,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질 확률을 숫자로 써봐. 적어보면 확률은 늘 민망할 만큼 작았어. 여백에는 일이 수월하게 풀릴 가능성도 적어둬. 머릿속에서 굴릴 때보다 걱정의 실체가 또렷해지면서 크기가 줄어들어.

타인의 시선 걱정에는 7 대 2 대 1 법칙이 약이 됐어. 주변에 열 명이 있으면 일곱은 우리에게 무관심하고 둘은 이유 없이 싫어하고 하나는 이유 없이 좋아한다는 이야기야. 다들 자기 생각을 하느라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어. 혼자 심사위원단 앞에 선 기분으로 살았던 거야(출처: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

걱정하는 나: 그래도 '신경 쓰지 마'라는 말만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아?

구분하는 나: 맞아, '신경 쓰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 걱정 덕분에 미리 준비하고 실수를 줄이는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 그래서 걱정을 통째로 버리기보다 준비로 이어지는 걱정만 남기기로 했어. 걱정이 떠오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부터 묻고 있으면 행동, 없으면 내려놓기. 밤에 커지는 걱정은 종이에 적고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숫자로 써보기. 곱씹기가 시작되면 노래 한 곡, 집 앞 한 바퀴처럼 정해둔 도구로 끊기. 의지로 생각을 끊는 건 잘 안 돼. 도구를 미리 정해두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었어.

오늘 밤 당장 뭐부터 해볼 거냐면, 지금 안고 있는 걱정 두 개를 적고 옆에 일어날 확률을 써볼 거야. 그리고 다음 주 일 걱정이 올라오면 '월요일에 출근해서 걱정하자'로 미뤄두고 이번 주말을 지키려 해.

 

이제 걱정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버렸습니다. 대신 걱정을 골라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면 움직이고, 손을 떠난 일이면 종이에 적어 크기를 확인하고 내려놓습니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결국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고 믿게 됐습니다.

오늘 밤 걱정이 머리를 켜면 종이 한 장을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적는 순간부터 걱정은 안개에서 글자가 되고, 글자가 된 걱정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FYp4JmJl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