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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에서 사정이 어렵다는 전화를 받은 날이면 하루까지 덩달아 무거워졌습니다. 직원이 힘든 개인사를 털어놓은 날은 퇴근하고도 그 얼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처음엔 제가 유난히 여린 편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걸 성격 문제로 보지 않았습니다. 감정은 실제로 사람 사이에 전염되고, 행복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3단계를 건너 퍼진다는 20년 추적 연구도 있습니다. 오늘은 남의 기분이 제 기분이 되는 감정전염의 구조와, 거기서 저를 지키는 거리에 관해 정리해봅니다.

먼저 확인하고 갈 것들

  • ✔ 감정전염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기본 작동 방식이다
  • ✔ 거울뉴런이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내 것처럼 복사한다
  • ✔ 공감이 강할수록 남의 문제까지 내 일처럼 짊어질 위험도 커진다
  • ✔ 이해와 거리는 함께 갈 수 있다 — 세 가지 실천법

1. 기분 탓이 아니라 뇌의 기본 작동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의 기분에 잘 휩쓸리는 건 멘탈이 약한 탓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이건 약함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기본 사양에 가까웠습니다. 감정전염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이 표정과 말투를 타고 저에게 그대로 옮아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아기가 까르르 웃는 영상만 봐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경험이 바로 이겁니다.

규모를 보면 더 놀랍습니다. 미국 프레이밍햄 지역 주민 4,739명을 2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행복은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친구,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까지 3단계를 건너 퍼졌습니다. 행복한 이웃이 옆집에 살면 제가 행복해질 확률이 34% 올라간다는 수치도 있습니다. 출처: BMJ(영국의학저널)

이 연구를 보고 나니 사무실 공기가 설명됐습니다. 한 사람이 한숨을 쉬기 시작하면 그 줄 전체가 가라앉던 날들, 그게 다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겁니다.

2. 거울뉴런이 표정을 복사하고 있었다

옮는 경로도 밝혀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거울뉴런입니다. 거울뉴런이란 남이 하는 행동을 보기만 해도 마치 제가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켜지는 신경세포로, 전운동겉질과 하측두정피질 등 뇌 여러 곳에 퍼져 함께 작동합니다. 누가 다리 꼬는 걸 보면 제 운동 영역이 함께 켜지고, 웃는 얼굴을 보면 제 표정 근육을 맡는 영역이 켜지고, 역겨운 냄새에 찡그리는 사람을 보면 냄새를 맡지도 않은 제 뇌가 같은 반응을 합니다. 출처: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PubMed)

흔히 공감은 상대의 상황을 머리로 이해한 다음에 감정이 따라오는 순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뉴런은 순서가 반대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웃는 사람을 보는 순간 제 기분이 먼저 좋아지고, 그 느낌을 근거로 상대의 행복을 이해하게 된다는 겁니다. 추론할 틈도 없이 전염부터 되는 셈입니다. 남 기분에 잘 휩쓸리는 게 유리멘탈이라서가 아니라, 거울뉴런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문제는 전염 자체가 아니라 옮아온 감정을 제 것으로 착각한 채 하루 종일 끌고 다니는 쪽이었습니다.

SNS를 닫고 나서 밀려오는 허탈함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남이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사는 장면을 보는 동안 제 뇌는 그 행복을 제 것처럼 복사하고 있다가, 화면을 끄는 순간 제 현실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거니까요. 뉴스와 피드를 오래 본 날일수록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끊을 필요는 없었고, 피드를 보는 동안 제 뇌가 남의 감정을 쉼 없이 복사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오래 붙잡고 있는 날이 줄었습니다.

3. 공감은 양날의 검이었다

일반적으로 공감은 많을수록 좋은 능력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래처의 어려운 사정에 공감하다 보면 회사 자금 사정을 알면서도 결정을 미루게 됐고, 직원의 개인사를 들은 날엔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을 알면서도 원칙대로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제가 너무 냉정했나 싶어 혼자 오래 곱씹기도 했습니다.

요즘 다크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이 양면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공감이 빠진 사람의 문제도 크지만, 반대로 모든 감정을 제 것처럼 받아들이면 남의 문제까지 제가 짊어진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지치는 사람은 결국 저였습니다.

거울뉴런이 축복이자 저주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게 해주는 같은 장치가, 제 일과 남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게도 만드는 겁니다. 능력 자체를 끄는 건 불가능하니 다루는 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공감을 줄이는 게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 듣는 일은 끝까지 듣되 결정만 분리하면, 오히려 감정에 휩쓸려 있을 때보다 상대를 더 오래, 더 일관되게 도울 수 있었습니다.

4. 이해와 거리는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저는 공감을 줄이는 쪽 대신 거리를 만드는 쪽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그 감정에 끌려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걸 구분선으로 삼았습니다. 위 체크리스트의 마지막 항목, 제가 쓰는 세 가지 방법은 이렇습니다.

  •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으면 '이 감정이 제 것인가, 옮아온 것인가' 한 번 묻기
  • 어려운 사정은 충분히 듣되, 결정은 감정과 분리해 원칙과 형평으로 내리기
  • 전염을 역이용해서 먼저 미소 짓기 — 표정 하나가 상대의 뇌에도 복사되니까

세 번째가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감정이 옮는 구조라면 좋은 감정부터 옮기면 되는 거니까요. 제가 찡그리고 다닌 날은 주변도 가라앉았고, 먼저 웃은 날은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당장 해볼 건 이 두 가지입니다. 아침에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미소를 보내는 것, 그리고 기분이 훅 가라앉는 순간이 오면 '이거 누구 감정이지'를 한 번 물어보는 것. 질문 하나로도 옮아온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힘이 빠졌습니다.

결국 건강한 공감이란 같이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면서도 저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정리하게 됐습니다. 제가 갖고 싶은 건 공감 없는 냉정함이 아니었고, 공감하면서도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힘이었습니다.

결론

저는 이제 제 기분을 날씨처럼 봅니다. 어떤 구름은 제 안에서 생겼고 어떤 구름은 옆에서 흘러들어온 겁니다. 출처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덜 흔들렸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한숨이나 피드 속 장면에 마음이 무거워지셨다면, 그 감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 번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미소 하나를 먼저 옮겨보시고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OvzZJSY-W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