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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고명환 작가님의 《고전이 답했다》를 읽고 나서, 고전이라는 걸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김지윤 님이 진행하는 '책 같이 읽어요'에서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됐는데, 단순한 고래 사냥 소설인 줄 알았던 이야기가 미국의 정치와 역사를 그대로 압축해 놓은 텍스트라는 설명에 저는 완전히 몰입해서 봤습니다.

모비 딕이 보여준 프론티어 정신, 그리고 제 생각
허먼 멜빌은 1819년에 태어나 한때는 부유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20대 초반까지 이렇다 할 커리어 없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결국 상선 선원을 거쳐 포경선에 올라탔고, 선장의 폭력성을 못 이겨 탈출했던 경험을 담은 데뷔작 《타이피》가 크게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더 깊이 있는 소설을 써보겠다고 야심 차게 도전한 작품이 바로 《모비 딕》이었는데, 정작 발표 당시엔 흥행에 참패했고 멜빌 사후에야 세계 최고의 고전으로 재평가받았다는 사실이 저는 꽤 인상 깊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흰 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이 복수심에 사로잡혀 고래를 쫓다가 결국 배와 선원 전부가 몰살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화자인 이스마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라는 문장에서 이스마엘은 성경에서 본처가 아닌 여종 하갈의 아들로 태어나 광야로 내쫓긴 인물을 가리키는데, 화자가 스스로를 이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는 설명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영상에서 가장 제 눈을 붙잡은 건 정치적 해석이었습니다. 19세기 포경 산업은 지금으로 치면 핵심 에너지 산업이었고, 고래 기름은 램프 연료부터 산업 기계의 윤활유까지 두루 쓰이던 지금의 석유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출처: New Bedford Whaling Museum). 그런데 1859년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출처: Drake Well Museum) 이 산업 전체가 급속히 쇠락했다고 하니, 하나의 에너지원이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되는 흐름이 그때도 똑같이 있었다는 게 새삼 신기했습니다.
배에 탄 30명의 선원 구성이 당시 미국의 30개 주를 은유한다는 해석이나, 백인 남성이 선장·항해사 같은 지휘부를 맡고 유색인종이 위험한 작살잡이나 노를 젓는 궂은일을 맡는 구조가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던 미국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서부 개척을 정당화했던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명백한 운명)라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즉 영토 확장을 신이 내린 사명처럼 포장했던 논리가 프론티어 정신, 다시 말해 개척자들이 스스로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내세웠던 정신을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변질시키는 과정과 에이허브의 광기 어린 복수극이 겹쳐 보인다는 해석까지 이어지니, 소설 한 편이 이렇게까지 무겁게 읽힐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다만 저는 이 정치적 해석에 전부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았습니다. 특히 피쿼드호를 지금의 다국적 기업에 빗댄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19세기 포경업은 개별 기업의 이윤 추구라기보다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 산업에 가까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다국적 기업은 국경을 넘나들며 자본과 공급망을 굴리는 존재인데, 당시 포경선은 그보다는 한 국가의 산업 기반을 떠받치던 노동의 현장에 더 가까웠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비유가 시대적 맥락을 조금 건너뛴 해석이라고 느꼈습니다.
- 허먼 멜빌은 포경선 탈출 경험을 바탕으로 데뷔작 《타이피》를 썼고, 이후 야심작 《모비 딕》을 발표했습니다.
- 19세기 고래 기름은 지금의 석유처럼 쓰이다가, 1859년 타이터스빌 유전 발견 이후 포경 산업이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 배에 탄 30명의 선원 구성과 인종별 역할 분담은 당시 미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은유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요약: 《모비 딕》은 단순한 고래 사냥 소설이 아니라 19세기 미국의 에너지 산업, 계급 구조, 프론티어 정신의 변질을 담은 정치적 텍스트로 읽히지만, 피쿼드호를 지금의 다국적 기업에 빗댄 해석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창업이라는 오래된 꿈과 고전에서 찾은 확신
제가 이 영상을 보면서 유독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직장인으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품어온 창업이라는 꿈을 늘 구상만 한 채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결국 후회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지는데, 동시에 가족을 생각하면 지금의 안정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 같은 두려움도 함께 밀려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누군가 "넌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해!"라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정말 간절합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게 고명환 작가님의 《고전이 답했다》였습니다. 고전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쌓인 사람들의 경험이 압축되어 있어서 지금 제가 살아가는 방향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엔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지만, 그 의심이 오히려 저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모비 딕》을 알게 되면서 저는 조금 다른 확신을 얻고 싶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흰 고래에 대한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에 광적으로 집착했고, 그 확신이 결국 배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런 맹목적인 확신이 아니라, 제가 왜 망설이고 있는지를 스스로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확신이라는 걸 이 영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누군가 대신 정답을 줄 수 없다면, 수백 년을 버텨온 글이 대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 고전은 수백 년간 쌓인 경험이 압축된 텍스트로, 지금의 선택이 맞는 방향인지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 에이허브 선장의 맹목적인 확신과 파멸은, 제가 원하는 확신이 어떤 종류여야 하는지를 거꾸로 보여줬습니다.
요약: 저는 창업이라는 오래된 꿈 앞에서 누군가의 확신을 갈망해왔지만, 《모비 딕》과 《고전이 답했다》를 통해 제가 진짜 필요한 건 맹목적 확신이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들
모비 딕을 완독할 수 있을까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분량이 길고 고래잡이 묘사가 방대해서 만만치는 않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정치·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고 나니 막연한 두려움은 좀 줄어들더라고요.
고전을 읽으면 저도 정말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왜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게는 해준다는 걸, 이번에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창업을 고민하는 저한테 고전이 정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요?
구체적인 사업 전략을 알려주진 않겠죠. 그래도 흔들리는 제 마음을 스스로 점검하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벅스 이름이 정말 모비 딕에서 나온 걸까요?
찾아보니 맞더라고요.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온 거고, 창업자들이 처음엔 배 이름인 피쿼드로 지으려다 침몰하는 배라는 이유로 바꿨다고 하니,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신중한 고민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결론
《모비 딕》을 정치적으로 읽어본 경험은 제게 고전이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 줬습니다. 저는 여전히 창업이라는 꿈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을 고전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이 블로그에 솔직하게 기록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