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확언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심리학 학술지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긍정적인 문장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다"는 연구가 실렸다는 걸 알고 꽤 당황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다음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실험을 다시 해본 연구에서는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연구를 하나씩 따라가 보면서, 제가 확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자존감 — 긍정 문장이 기분을 떨어뜨렸다는 연구

문제의 연구는 캐나다 워털루대 등의 연구진이 2009년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에게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I'm a lovable person)"라는 문장을 반복하게 한 뒤 기분과 자존감을 측정했습니다. 이런 문장을 심리학에서는 긍정적 자기진술(positive self-statement)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긍정적인 말, 우리가 흔히 확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결과는 사람에 따라 갈렸습니다. 평소 자존감이 높은 참가자는 문장을 반복한 뒤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는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존감은 특성 자존감(trait self-esteem), 즉 그날그날의 기분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기 평가를 뜻합니다. 연구진은 지금 자신이 믿는 모습과 너무 동떨어진 문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제가 확언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나는 부와 성공을 끌어당긴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정말?" 하고 반문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거든요. 출처: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ubMed

요약: 2009년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긍정 문장을 반복하자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재현 — 같은 실험을 다시 했더니 결과가 달랐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자존감이 낮으면 확언을 하지 말라"는 결론이 났을 겁니다. 그런데 과학에는 재현(replication)이라는 절차가 있습니다. 재현이란 다른 연구자가 같은 방법으로 실험을 다시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2010년대 이후 심리학에서는 유명한 연구를 다시 해봐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를 재현 위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20년 미국 연구진은 2009년 실험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연구는 원 실험을 최대한 그대로 따라 했고, 두 번째 연구는 긍정 문장 대신 자신의 가치를 글로 적는 방법까지 함께 비교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조건 사이에 기분이나 자존감, 목표 달성에서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역효과가 난다는 결과도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Journal of Contextual Behavioral Science

비슷한 일은 다른 연구에서도 있었습니다. 2010년에는 "나는 할 것이다"보다 "내가 할 수 있을까?"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혼잣말이 동기를 더 높인다는 연구가 화제가 됐습니다. 이때 핵심 개념이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즉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생기는 동기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재현 시도에서는 질문형과 선언형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제가 내린 해석은 이렇습니다. "확언은 독이다"도, "확언은 무조건 효과가 있다"도 아직은 단정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보입니다.

요약: 2020년 재현 연구에서는 확언의 역효과가 다시 나타나지 않아, 어느 쪽으로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안 — 제가 지금 확언을 쓰는 방식

연구 결과가 엇갈린다는 걸 알고 나서, 저는 확언을 버리기보다 쓰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연구가 정답을 주지 못한다면, 제 마음이 보내는 반응을 기준으로 삼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 감정에서 출발해 직접 만든 문장으로 확언을 이어오면서, 솔직히 주변 환경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아직 미미합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 긍정적인 부분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도 넘칩니다. 연구 결과가 엇갈려도 제가 확언을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변화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래 기준으로 문장을 고릅니다.

  • 지금 믿을 수 있는 수준의 문장부터 쓴다
  • 읽을 때 속으로 반박하는 목소리가 크면, 그 문장은 바꾼다
  • 결과보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문장에 담는다
  • 읽고 나서 기분이 가라앉으면 그날은 쉬어간다

예를 들어 "나는 완벽하다"보다는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처럼, 지금 믿을 수 있는 만큼으로 낮춘 문장이 제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다만 가치를 적는 방법 역시 2020년 연구에서 뚜렷한 효과가 확인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는 이 방법을 정답이라기보다 저에게 맞는지 실험해보는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요약: 확언은 버리기보다, 지금 믿을 수 있는 문장으로 바꾸고 제 반응을 기준으로 조절하는 편이 현실적이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물었던 것들

Q. 그럼 확언을 그만둬야 할까?

A. 그만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역효과를 보고한 연구가 재현되지 않았으니, 확언 자체를 독으로 볼 근거는 아직 약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문장을 고르는 기준을 바꿨습니다.

 

Q. 자존감이 낮을 때는 확언을 피해야 할까?

A. 연구 결과가 엇갈려서 단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읽고 나서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면, 그 반응을 가장 정확한 신호로 보고 문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Q. "나는 할 것이다"보다 "내가 할 수 있을까?"가 나을까?

A. 한때 질문형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화제였지만, 이후 재현 시도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식보다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장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로 했습니다.

 

Q. 나에게 맞는 확언 문장은 어떻게 알아볼까?

A.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반박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문장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거슬리는 문장은 조금 더 현실적인 표현으로 낮춰서 다시 읽어봅니다.

 

결론

확언이 역효과를 낸다는 연구를 처음 봤을 때는 그동안의 습관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재현 연구까지 따라가 보니, 중요한 건 확언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장을 고르느냐였습니다. 제 경우엔 환경보다 마음과 에너지가 먼저 달라졌습니다. 오늘 확언을 읽다가 속으로 "정말?"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 문장을 지금 믿을 수 있는 만큼으로 한 단계 낮춰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PubMed — Wood et al. (2009), Flynn & Bordieri (2020), Senay et a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