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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집착하는 건 그만큼 많이 사랑해서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아내를 만나기 전, 연락이 없으면 불안했고 연락이 오면 또 언제 마음이 식을까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의 애착유형 이론을 들여다보니 그 불안은 사랑의 크기보다 제가 저 자신과 상대를 어떻게 보느냐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줄요약
집착은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잃을까 두려운 마음이 사랑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배운 것 — 애착유형은 자신과 타인을 보는 눈이었다

애착유형이란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져 어른이 된 뒤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되풀이되는 관계의 패턴을 말합니다. 그 출발점으로 자주 소개되는 실험이 낯선 상황 실험입니다. 여기서 낯선 상황 실험이란 아이를 낯선 방에 두고 부모가 잠시 나갔다 들어올 때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해 애착 형태를 분류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개념을 연애로 넓힌 연구가 1987년에 나왔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신디 하잔과 필립 셰이버는 성인들에게 자신의 연애 방식과 가장 닮은 설명을 고르게 했는데, 절반을 조금 넘는 약 56%가 안정형을, 약 25%가 회피형을, 약 19%가 불안형을 골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Hazan & Shave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1987)

1991년에는 킴 바살러뮤와 레너드 호로위츠가 이를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기준은 단 두 가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지와 타인을 긍정적으로 보는지였습니다. 출처: Bartholomew & Horowitz,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1991)

  • 안정형: 자신도 믿고 타인도 믿는 유형
  • 회피형: 자신은 믿지만 타인은 믿지 않는 유형
  • 불안형: 자신을 믿지 못하고 타인에게 기대는 유형
  • 혼란형: 자신도 타인도 믿기 어려운 유형

이 분류를 보고 가장 크게 와닿은 점은 성격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문자 하나를 받아도 자신을 믿는 사람은 그냥 넘기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식어 가는 마음의 증거를 찾습니다.

돌아본 것 — 불안형처럼 전전긍긍하던 시절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상대의 답장이 늦으면 휴대전화를 몇 번이고 확인했고,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혼자 의미를 붙였습니다. 별일 아닌 일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들키지 않으려 또 애썼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전전긍긍한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전형적인 불안형의 모습이었습니다. 불안형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해 상대의 반응으로 제 가치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래서 안정된 날보다 흔들리는 날에 오히려 사랑을 실감하고, 아무 일 없는 날을 더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더 아팠던 건 결과였습니다. 잃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관계는 오히려 불편해지고 멀어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추격과 회피의 순환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추격과 회피의 순환이란 한쪽이 확인을 요구하며 다가갈수록 다른 쪽은 부담을 느껴 물러나고, 그 물러남이 다시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을 말합니다. 불안형과 회피형이 서로에게 끌리기 쉽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다르게 본 것 — 집착은 줄어든 게 아니라 옮겨 갔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향한 그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줄었습니다. 그런데 집착 자체가 사라졌다고 하기엔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자금 계획이 어긋나거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그때의 불안과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대상이 사람에서 일과 숫자로 옮겨 간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착을 사랑의 크기로 설명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 끊임없이 확인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서운해하는 마음의 뿌리는 제 안의 불안이었습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제 감정을 채우는 데 더 집중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다만 반대 방향의 함정도 경계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조금만 매달려도 "불안형이네", 연락이 뜸하면 "회피형이네" 하고 쉽게 이름을 붙입니다.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애착유형은 낙인을 찍는 도구가 아니라 저와 상대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지도로 쓸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애착유형은 평생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획득된 안정 애착이라고 부르는데, 어린 시절 불안정한 애착을 경험했더라도 믿을 수 있는 관계를 꾸준히 경험하며 어른이 된 뒤 안정형에 가까워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제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예전 같은 불안을 덜 느끼는 것도 이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무리

사람의 마음은 노력한다고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집착으로 얻은 안정감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대를 믿지 못해 시작된 집착은 결국 상대와 저를 함께 지치게 했습니다. 이제 제가 생각하는 성숙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까지 받아들이는 여유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마음을 지나고 계신 분께 이 글이 작은 쉼표가 됐다면 공감♥ 한 번 부탁드립니다.

참고: “혹시 나도 불안형일까?” 김경일 교수의 불안형, 회피형, 안정형 완벽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