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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하다 앞차가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면 따라가지는 않아도 혼자 씩씩대며 한참 기분이 상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누가 무심코 던진 말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으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 그런데 심리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화는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에 붙인 해석에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오래 괴롭힌 남 탓과 피해의식의 구조를 정리해봤습니다.

 

3. 유명한 빈 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배를 띄우고 차를 마시는데 다른 배가 와서 쾅 부딪힙니다. '어떤 놈이 감히' 하며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는 빈 배였습니다. 그 순간 화는 머쓱하게 사라집니다. 부딪힘 자체는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화나게 했던 건 충돌이라는 사건이기보다 '저 안의 누군가가 나를 무시했다'는 머릿속 이야기였던 겁니다.

 

4. 연구 근거도 있습니다. 심리학에는 적대적 귀인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상대의 모호한 행동에서 악의를 먼저 읽어내는 해석 습관을 말합니다. 41개 연구 6,017명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 이 편향이 강할수록 공격 행동이 뚜렷하게 많았고, 공격성이 심한 집단일수록 그 연관이 더 컸습니다(출처: Orobio de Castro et al., Child Development(2002)). 끼어든 차의 운전자는 초보였을 수도, 급한 환자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최악부터 골라잡는 습관이 굳어진 상태가 피해의식입니다.

 

5.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반대라고 합니다. 뇌의 비상 알람인 편도체가 오래 눌려 이미 지쳐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자기 존중이 단단한 사람은 작은 무시에 긁히지 않습니다. 속으로 이미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던 날일수록 남의 한마디에 폭발했습니다. 끼어들기는 방아쇠였을 뿐 화약은 이미 안에 쌓여 있었던 셈입니다.

 

6. 그래서 요즘은 욱하는 순간이 오면 스토리텔링부터 멈춰봅니다.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꼭 나한테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이렇게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면 신기하게 감정이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절실히 느끼는 게 있습니다. 남을 바꾸는 것보다 해석을 바꾸는 쪽이 훨씬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7. 더 근본에는 자기 존중이 있었습니다. 남의 말에 덜 흔들리려면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힘부터 필요했습니다. 방법도 배웠습니다. 셀프 컴패션이라고 하는데, 실수한 나를 가장 친한 친구 위로하듯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친구가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했던 습관을 뒤집는 겁니다. 연구에서도 자기 연민을 훈련한 사람이 오히려 더 노력하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합니다. 자기 수용이 먼저고 존중은 그 위에 자랍니다. 욱하는 성격이 타고난 거라 못 고치는 건 아닌지 궁금했는데, 해석은 습관이라 바뀐다는 게 얻은 답입니다. 최악부터 떠올리는 자동 스토리텔링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절반은 됐습니다. 끼어든 차에 씩씩대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8. 다만 모든 분노를 개인의 멘탈 문제로만 보는 해석에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반복해서 무시당하는 상황이라면 화가 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부당한 일에도 무조건 참으라는 건 아닙니다. 부당함에 나는 화는 정당한 신호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고 감정에 끌려가지 않은 채 할 말을 차분히 하는 힘입니다. 존중할 만한 구석이 도무지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 존중에 자격이 필요 없다는 걸 이번에 배웠습니다. 순서는 연민부터입니다. '고생했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지금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 존중은 그 위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저를 무조건 대단하다고 우기기보다 부족한 모습까지 인정하면서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 태도가 생각하는 균형입니다(출처: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

 

요즘 지키는 세 가지입니다.

  • 욱이 올라오면 상대의 사정에 대한 다른 가능성 두 개를 먼저 떠올린다 — 초보인가, 급한 일인가
  • 상대를 따지기 전에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를 스스로 묻는다
  • 자기 전에 베스트 프렌드처럼 스스로에게 한마디 건넨다 — '오늘 수고했어, 잘하고 있어'

9. 오늘 당장은, 누군가에게 긁히면 빈 배 하나를 떠올려볼 겁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침착하고 차분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할 수 있다'를 천천히 되뇌어보려 합니다. 양궁 선수들이 쓴다는 그 문장입니다.

 

10. 이제 긁히는 순간마다 상대를 심문하기 전에 머릿속 이야기를 먼저 검문합니다. 빈 배였을 가능성부터 따져보는 겁니다. 그리고 밤에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대신 다독입니다. 해석을 바꾸고 존중을 쌓는 이 두 가지가 남 탓과 피해의식에서 꺼내준 실질적인 방법이었습니다.

 

11. 오늘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잠들기 전에 한 번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배에 정말 사람이 타고 있었는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jy9KFaYs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