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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 생기면 이상하게 그 물건만 눈에 들어오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요즘 마음에 둔 차가 생기고 나서 출퇴근길에도, 회사 주차장에도 그 차만 보였습니다. '이 차가 원래 이렇게 많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알아볼수록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좋은 후기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쁜 후기에는 반박할 이유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심리학은 이 현상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확인하고 갈 것들
✔ 확증편향은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생각의 습관입니다
✔ 1960년 실험에서 가설을 확인만 한 사람일수록 틀린 결론을 반복했습니다
✔ 경험과 지식이 많을수록 오히려 자기 판단을 덜 의심하게 됩니다
✔ 줄이는 방법은 '제가 틀렸다면 무엇이 보일까'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확증편향, 사고 싶은 차가 도로를 가득 채운 이유
확증편향이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해 주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밀어내는 경향을 말합니다. 미국 심리학자 레이먼드 니커슨은 1998년 리뷰 논문에서 확증편향을 기존 믿음이나 기대에 유리한 방향으로 증거를 찾고 해석하는 현상으로 정리했고, 일상의 판단부터 과학 연구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출처: Nickerson, Review of General Psychology(1998)
제 차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두 단계가 겹쳐 있었습니다. 먼저 선택적 주의가 작동했습니다. 여기서 선택적 주의란 수많은 자극 중에서 지금 관심 있는 것만 골라 받아들이는 뇌의 처리 방식을 말합니다. 도로에 그 차가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제 뇌가 그 차를 걸러내지 않기 시작한 겁니다.
그다음이 확증편향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사고 싶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이 옳다는 증거만 모으고 있었습니다. 연비가 아쉽다는 후기에는 '운전 습관 탓이겠지', 승차감이 좋다는 후기에는 '역시'라고 반응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결론에 맞춰 이유를 고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 관심이 생기면 관련 정보가 더 자주 눈에 띕니다(선택적 주의)
- 결론을 정한 뒤에는 그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만 무겁게 느껴집니다(확증편향)
자기확신, 경험이 많을수록 더 깊이 빠졌다
확증편향을 처음 실험으로 보여준 사람은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입니다. 1960년 그는 참가자들에게 '2, 4, 6'이라는 숫자 세 개를 보여주고 이 숫자들이 따르는 규칙을 맞혀 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2-4-6 과제입니다. 여기서 2-4-6 과제란 참가자가 직접 숫자 묶음을 제시해 규칙에 맞는지 확인받으면서 숨은 규칙을 추리하는 실험을 말합니다. 정답은 '커지는 수 세 개'처럼 단순했지만, 대부분은 '2씩 커진다' 같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맞는 숫자만 계속 넣어 봤습니다.
결과는 꽤 냉정했습니다. 참가자 29명 중 틀린 답 없이 곧바로 규칙을 맞힌 사람은 6명뿐이었고, 9명은 두 번 이상 틀린 결론을 냈습니다. 웨이슨은 반복해서 틀린 사람들이 자기 가설을 깨뜨려 볼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출처: Wason,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1960)
이 대목에서 제 직장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재무 업무를 하다 보면 자금계획이나 대금 지급 시기를 두고 다른 부서와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저는 회사 자금 상황과 숫자를 근거로 판단하니 제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제 판단에 유리한 자료만 강조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상대 부서의 사정은 비현실적이라고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더 경계할 점은 경험이 쌓일수록 이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래 일하며 얻은 자신감은 어느새 고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직급이 높거나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말이 정답이 되지는 않는데도, 저 스스로 제 판단을 의심하는 횟수는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한번 좋게 본 동료의 실수는 이해하려 했고, 불편하게 본 동료의 성과는 쉽게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반대증거, 틀릴 수 있다는 질문부터 던졌다
일반적으로 확증편향은 정보를 잘못 받아들이는 문제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뿌리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더 많이 모으는 것보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게 효과가 컸습니다.
과학철학에는 반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반증이란 제 가설이 맞는다는 증거를 찾는 대신, 가설이 틀렸음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를 일부러 찾아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웨이슨의 실험에서 정답에 빨리 도달한 사람들도 자기 가설에 맞지 않는 숫자를 넣어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해보고 있습니다.
- 결정하기 전에 '제가 틀렸다면 무엇이 보여야 할까'를 한 줄로 적습니다
- 자극적인 영상보다 책이나 전문 기사로 처음 정보를 접합니다
- 부서 간 의견이 갈리면 상대 쪽 근거를 제가 먼저 정리해 봅니다
-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도 근거를 확인하기 전에는 결론으로 삼지 않습니다
특히 첫 번째가 도움이 됐습니다. 말은 흔적이 남지 않지만 글은 남기 때문에, 적는 순간 제 논리의 빈틈이 보였습니다. 차를 고를 때도 '이 차가 저와 맞지 않는 이유 세 가지'를 먼저 적어 봤더니, 그동안 애써 외면한 단점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확증편향은 생각이 좁은 사람에게만 생기는 건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구들을 보면 지식이 많고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깊이 빠질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숫자를 다루는 일을 오래 하면서 제 판단을 덜 의심하게 됐습니다.
Q. 사고 싶은 물건이 자꾸 눈에 띄는 것도 확증편향인가요?
A. 엄밀히 말하면 관심 있는 대상이 더 자주 보이는 건 선택적 주의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다음에 좋은 정보만 골라 믿기 시작하면 확증편향으로 넘어갑니다. 제 차 고민이 딱 그 순서였습니다.
Q. 확증편향을 아예 없앨 수는 없나요?
A. 제가 찾아본 바로는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고, 줄이는 쪽이 현실적인 목표로 보입니다. 저는 결정 전에 반대 근거를 적어 보는 습관만으로도 판단이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마무리
확증편향을 들여다보며 가장 크게 남은 건,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이 '제가 틀림없이 옳다'고 확신할 때라는 점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맞느냐였습니다. 경험이 쌓인다는 건 정답을 많이 안다는 뜻이 아니라, 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자주 깨닫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당연하다고 믿은 생각 하나를 한 번만 의심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 글이 그 계기가 됐다면 공감♥ 한 번 부탁드립니다.
참고: 확증편향: 인간 지성의 적
